교사로 산다는 것

초등 교원 임용시험 응시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교대 입시 결과 기사가 눈에 띈다. 상당히 자극적이다. 이제 수능시험에서 6등급을 받는 학생도 교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걸 보고 여러 생각이 든다. 교사가 꼭 공부를 잘 해야 하는 것인가. 요즘 시대에 교사에 대한 의식 변화도 고민해 볼 문제다. 이것에 대한 해답을 내려줄 수는 없다. 여느 때와 같이, 그저 이 주제를 가지고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본다.

과거의 교사

나는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모두 경험했다. 아마 3학년 때인가 명칭이 바뀐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에도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많이 맞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도 그들과 친구였기에, 같이 맞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숙제를 안 냈다고 맞았다. 지각해서 맞았다. 성적이 안 나와서 맞았다. 거짓말을 해서 맞았다. 선생님에 대한 태도가 불손해서 맞고, 청소관리구역이 더러워서 맞았다. 그리고 기타 등등, 다양한 이유로 맞았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을 뒤에서 많이 욕했던 것 같다. 합당한 이유로 맞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으니. 어쩌다 그날 함께 맞은 친구들과 모이면, 대화의 주제는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억울한 사연이 있는 친구도, 그저 권위에 눌렸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표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참의 대화 끝에는 아픈 엉덩이와 후련한 마음이 남았다.

그리고, 그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 이제 학부모가 되고, 교사가 되었다.

교사의 자격

공부 역량, 가르치는 역량만이 교사의 자격은 아니리라. 인간을 성장 시킨다는 사명감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학교라는 조직의 일원으로 하나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를 이해하고 대하는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

어느 것도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것들이다. 나 스스로도 이런 교사의 자질 중 몇 개는 갖추고 있지 못한 듯 싶다. 그리고 이건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동료 교사는 물론이고, 학생과 학부모, 사회의 대부분의 관계 없는 사람들도 그리 생각한다. 아니, 그럴 것을 기대한다.

성적

그러면, 성적이 좋은 교사가 그렇지 못한 교사보다 우수할까. 위의 자질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사범대에서 배운 것은 “어떻게 무엇을 어떤 윤리적 자세로 가르쳐야 하는가” 였다. 직접적인 관계가 보이는가. 그렇지 않으리라. 다만, 성적이 좋았으면, 위 내용의 책을 더 열심히 읽었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고 읽은 것을 실천한다 말할 수는 없다.

바람직한 인성과 적절한 수준의 능력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어른으로 키워낸다. 좋은 말이다. 해야 할 일이고, 나의 목표이다. 그런데 사람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욕심은 끝이 없다. 하나를 채워주면 다른 것도 요구한다.

사교육과의 전쟁

사교육과 공교육은 경쟁 상대가 아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사교육은 선택이고 공교육은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은, 사교육 내의 경쟁 시장과 공교육의 그렇지 않은 여건, 또는 둘의 다른 목적 때문이다. 같은 선상에 목적이 다른 둘, 조건이 다른 둘을 놓고 비교해서는 안 된다. 사교육을 잡기 위한 대책으로 공교육 정책이 시행되어서는 안되며, 효과도 없다.

하지만, 현상을 대충 보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마치 둘을 경쟁 상대로 놓고, 사교육의 팽창이 공교육의 수업 질 하락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 어느 때보다 우수한 성적을 받은 젊은 교사들이 많은 시대이다. 과거에는 숨어 있던 논리가 갑자기 튀어 나온다.

현실

학원을 잘 다니면 성적이 오를 것 같은가. 일부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전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수준별 케어, 개인별 케어가 불가능하다. 여러 정책적 지원으로 기초학력미달 학생에 대한 보충수업 등의 제도가 운영되지만, 효과성 여부는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막말로, 학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대다수 사교육을 의지하는 학생들이 사교육의 결과물을 올라간 성적으로 잘 받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극히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실상 학생의 수준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무지막지한 학원 수강 학생 비율과 사교육 비용 통계 자료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 왜 사교육을 시키는가. 개인적으로는 불신,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 구조가 과도한 경쟁과 노력을 요구하고, 그러한 구조에서 생존을 위한 일종의 지표로 대학과 성적이 기능한다. 남들과 같은 공교육을 받는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사교육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되돌아가기

솔직히 생각하자. 불신의 근원이 학교인가, 교사의 자질인가, 아니면 아이들인가. 이 글은 사교육 전반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사교육이 심한 동네에서 자랐고, 나 또한 부모님이 많은 돈을 투자했다. 그런데 그 효과에 대해 말하자면, 심리적이고 사회학적인 영향 빼고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냥 더 노력했으면 되는 일이었다.

교사에 대한 의식, 인식으로 돌아가자. 아직도 아이가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가 공교육의 질적 하락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과연 교사의 탓일까. … 솔직히 생각하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아이를 바꿀 수 있을까.

글쎄. 성적이 아쉬운 아이의 성적을 올리고 싶은가.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같이 공부하면 된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 그래도 안 될 수 있다. 별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학교 교사의 입장에서는, 이걸 유도하기 어렵다. 단지 내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내가 더욱 그런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오해가 아닌 이해, 비난이 아닌 격려와 조언을 바란다.

나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

a teacher in deep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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